버려진 사진
버려진 사진
  • 윤명희 기자
  • 승인 2020.03.17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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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관계없는 사진=출처: 구글검색
사진은 본 작품과 관계없음=출처: 구글검색

 

버려진 사진

 

글. 윤 명 희



친구가 운영하는 고물상에 들렀다. 부탁해 둔 주물 난로가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은 그날은 겨울 추위가 막 들어서고 있었다. 친구는 화물차에서 묵은 짐들을 내렸다. 요양원에 간 이웃 할머니의 살림을 정리 중이라 했다. 냉장고에서 나온 계란 몇 알이 소쿠리에 담겨 있고 그 옆에는 미숫가루가 반쯤 담긴 통과 고춧가루 통이 발치에 차였다. 냉동실에서 나온 고등어와 얼어붙은 시루떡 몇 뭉치에 지난가을에 넣어 둔 홍시까지 혼자 살아온 할머니의 생활이 다 보이는 듯했다.

바닥에 떨어진 수주(數珠)를 줍는데 발밑에 사진이 있었다. 남의 얼굴을 밟고 있는 것 같아 발이 화들짝 놀라 뛰었다. 고물상의 흙먼지를 덮어쓴 여러 장의 사진을 집어 들었다. 사진에는 할머니와 단발머리의 소녀가 있었고 친구인지 형제인지 모를 동년배의 모습도 있었다.

짐을 내리던 고물상 친구는 할머니의 자식들이 이런 걸 왜 챙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넘어진 박스를 세웠다. 박스에는 효자손을 비롯한 잡동사니와 많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요양원으로 가는 할머니는 사진까지 챙겨 갈 여력이 없었나 보다. 여러 짐들이 분류되어 고철더미 위로 던져지고 잡동사니들은 대형 쓰레기봉투로 들어갔다. 친구는 안이 훤히 보이는 쓰레기봉투에 사진을 넣기가 뭣한지 한쪽으로 모았다. 할머니는 자기 얼굴이 고물상 바닥에서 남의 발에 밟히고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 봤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손때 묻은 살림들을 정리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것이 앨범이었다. 동생들과 둘러앉아 앨범을 펼쳤다. 어머니의 살아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모여 있었다. 대청마루에 앉은 외할머니 흑백사진부터 자식들의 결혼사진, 손자의 돌 사진까지 찰나의 순간들이 영원으로 남았다. 사모관대를 한 아버지와 족두리를 쓴 어머니의 흑백사진은 손이 빠른 첫째 동생이 챙겼다. 자기가 주인공이었던 결혼사진은 제각각 가방에 넣었다. 손자들과 함께 웃는 사진을 보며 그때의 이야기로 눈물을 찍어냈다. 동생들은 뺏기지 않으려고 이건 내가 가져갈 거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사진 속 그날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따져 나눴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어머니만의 사람들이었다. 연분홍 저고리가 진달래 꽃밭에 숨어있는 어머니의 친구들은 내 나이보다 더 젊었다. 장구 장단이 흥에 겨운 동네 분들의 사진에서는 내 어릴 적 친구들의 부모들도 있었다. 동시대를 살아온 그들의 행적은 아무도 챙기지 않아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인연들은 우리에게 그리 소중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어머니가 기억하고 싶어 찍어 둔 장소의 사진들은 길바닥에 버려지는 광고 전단지나 별다르지 않았다. 남은 사진들을 모으니 앨범 한 권이 되었다. 그것을 빈 앨범과 함께 쓰레기로 버릴 수는 없었다. 불에 태워서 어머니께 보내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모두 아파트에 사는지라 태울 만한 곳이 없었다. 어머니의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쥐고 앉아 고민하다 결국은 맏이인 내가 보자기에 싸서 집에 가져왔다.

그 이후로 나는 점점 카메라 앵글 속에서 멀어졌다. 아무도 갖지 않을 사진에 나를 넣고 싶지 않았고 정작 내가 없는 세상에 남은 흔적들이 떠돌아다니게 하고 싶지 않았다.

기회만 되면 태우겠다는 약속은 빈말이 되어갔다. 그 앨범은 이사할 때마다 창고에서 창고로 옮겨졌고, 이삿짐 속에 묻혀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할 때도 있었다. 더군다나 요즘은 사진을 휴대폰에 저장하다 보니 한 번쯤 펴 놓고 볼 일도 없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아스라한데, 한 번도 뵌 적 없는 할머니의 사진 앞에서 뒤늦게 그 앨범을 떠올리고 있다.

고물상 마당에 있는 주물 난로에 불을 붙였다. 할머니의 자식들을 대신해 사진을 한 장 한 장 집어넣었다. 삶의 조각들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멍청히 듣고 있다. 할머니의 모습이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창고를 뒤졌다. 먼지 앉은 보자기를 푸는 손이 바빠졌다. 앨범은 서로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힘을 주자 오랫동안 잠을 잤던 사진의 한 귀퉁이가 찢겨나갔다. 한 장 한 장 빼며 사람들 속에 묻힌 어머니와 마주했다.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당신의 지난 시간들이 아는 사람 누구도 보지 않는 사진으로 남았다.

당신의 소중했던 순간들을 가져가시라고 불을 붙였다. 어머니는 시절 인연들과 춤을 추며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기대선 문설주도, 조여 묶은 허리 끈도 따라갔다. 흔적들이 떠나면서 남긴 냄새를 오롯이 맡고 있다.

사라지는 불꽃을 보며 휴대폰에 저장된 내 사진들을 넘겨보았다. 메모처럼 넣어둔 오래된 것부터 하나하나 삭제했다. 지워도 괜찮을 사진이 의외로 많았다. 폰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 일어서는데 sns에 올려놓은 흔적들이 딴죽을 걸었다. 만인이 보는 앨범에 내 생활을 펼쳐 놓고는 열쇠마저 감춘 나도 그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 인터넷 계정의 비밀번호는 oooo이라고.

*윤명희: 대구에서 태어나 현대수필 등단 했으며 저서로는 《경상도 우리 탯말》(공저), 에세이 《말대가리 뿔》 그리고 3인수필선집인  《다만, 오직, 그냥》등이 있으며 지금은 경주에서 부군 배씨 아저씨와  '배가벌꿀'을 농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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